서양 미술사에서 음식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그림에 많은 은유를 넣곤 했다는데,
난 그냥 "먹다"라는 행위를 빌려 일어나는 온갖 욕망에 대한 은유가 너무나도 재밌었다.
그 중 구경하기에 제일 재밌는 그림은 풍자화였다.
위와 같은 풍자화가 그려진 배경에는 많은 이들의 고통과 굶주림, 불만과 슬픔이 깔려있겠지만,
먼 훗날의 이방 땅에 살고있는 인간으로서 그 당시의 맥락보다는 이 그림이 갖는 유희적인 부분이 너무나도 즐겁다.
왜냐 물어본다면, "나는 너가 이래서 싫다." 라는게 노골적으로 보인다는게 첫번째 이유고,
초상화처럼 사람을 그렸으되 이 그림 어디에도 대상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으며,
셋째,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사람을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느끼기엔 현존하는 인류는 다 비슷하게 생겼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분류하는거 자체가 웃길만큼 거기서 거기처럼 생긴 생물들이
자기들의 역사와 권력을 "겉가죽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하여 서양인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행위가
꽁지깃이 길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은 새를 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미의 기준이 되고 싶다면 조금 더 다양한 모양새의 인류 중에
문명을 이루기에 제일 편의성이 높은 육체가 아름답다고 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간에 이런 이상한 이유로 사람의 욕망이 극대화되어 신체가 변형된,
혹은 왜곡된 표현법이 너무나도 좋다.
서문이 왜이렇게 길었느냐 하면...
위와 같은 장면이 빠르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를 과시하는 식문화와 그 탐욕스러움의 노골적인 표현 방식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으로서
이 내용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다음에 또 볼 것 같다...
최고야...
또 하나 즐거운 점은 이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추접스러운지에 대하여
얼굴이 아닌 식탁 아래를 비춰 보여준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탐욕스러운 대상, 즉 부패하고 할 줄 아는게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 밖에 모르는
무능력하고 게으른 대상을 돼지에 비유한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화에는 터지기 직전의 물풍선 같은 체형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돼지를 연상시키는 체형이나 얼굴이 아닌 제멋대로 식탁을 헤집는 행동을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서 메세지를 전달한다.
사람의 정면이 아니라 신체 일부 혹은 뒷모습이나 그 대상의 소유물을 겨냥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좋아하는데, 식탁 아래를 이용하여 표현하는게 마음에 들었다.
다만 활기찬 바이올린 선율에 비해 장면의 구도가 대부분 안정적이라는게 아쉽다. 이 모든게 인간을 홀린 악마나 뭐 그런것의 만찬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인간의 탐욕과 타락에 대한 이야기라면 구도가 심히 안정적이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장면을 따서 기울기를 봐야겠다. 음악 없이 본다면 지루할 수도 있을것 같아서...
생각해보니 다음엔 음소거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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