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4 일용할 양식 기록
아모스 8:1 -14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나 넘칩니다. 스마트폰 어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풍부해도 듣지 않으면 영적 기갈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슴을 잘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획실히 성경헤 대한 접근성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상당히 개선되었다. 나는 성경을 구매하지 않아도 언제든 필요한 구절을 원하는 번역본으로 찾을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이렇게 믿음을 키우기 편한 시기에 사람들이 당면한, 그리고 내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기술이 발전한다 하여 사람들의 여가생활이 늘어났냐 하면 그렇지 않다. 전구가 발명되고, 전기가 보편적으로 쓰이며, 컴퓨터가 보편화 된 지금, 과연 해가 지면 집에 틀어박혀야 했던 과거보다 여가시간이 늘어났을까. 여가시간은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 철학을 구축할 시간이 충분했을까?
한국의 나이 강박은 기묘하다.
"모든 10대는 삼라만상을 다 깨우쳤다"
이 문장은 참인가 거짓인가? 아마 대부분은 거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본인들이 다 컸다 주장하는 법적 미성년자들도, 자신의 모든 순간의 선택과 현재 애써 힘쓰고 있는 일이 어떻게 끝날지 아느냐 물어보면 당당하게 그렇다 말하며 확고히 믿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런 애들이 무엇도 잘 모르면서 태어나 겪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전공을 위해 힘쓴다. 과연 그게 자신의 기질과 잘 맞을지 모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대게 자신이 이때 정한 정공대로 직업을 갖길 희망한다. 그 직업을 수행하며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나야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니 이렇게 말하지만,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약 나이 강박이 없으며 언제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게 글로벌 풍조고, 한국만 유달리 이렇게 나이를 따진다면 아마 이러한 나이 강박이 세계적으로 연구할 주제가 되었을 것이다. 저 나라는 저러한 문화와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오! 신기하군요. 이러면서 진귀한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구경하는 동물원 관광객처럼 반응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저출생과 청년 실업률이 늘어나는 문제에 대해 이런 나이강박 문제가 없는 것을 봐서는 말이다. (확대해석이란 생각도 든다. 반박시 근거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견해는 늘 환영이니까)
인생 철학을 논하다가 나이 강박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가장 여유롭고 가장 배움에 특화된 시기에도 인생에 가장 큰 기둥이 될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질을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안그래도 상당히 고된 교육직 종사자들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님을 분명히한다. 나는 한국의 풍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IMF를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돈이 되느냐"를 따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야 사람이 계속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살아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피하는 것은 인간을 넘어 생명을 가진 것들의 본능이다. 이 본능이 없었다면 모든 종은 아마 대를 잇지 못하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파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지 않아 익사했을 것이며, 토끼는 날카로운 이빨에 도망가지 않아 한 끼 식사가 되었을 것이고, 인간은 뭐... 정말 다종 다양한 방법으로 죽지 않았을까(그런데 그 와중에 복어까지 요리해 먹을 집념이 있었던것 보면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 같긴 하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선대를 지나 우리는 IMF의 두려움을 극복하며 자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음을 깨닫는다. 어떤 것을 할 때, 돈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도해보는 사람들. 내 주변에 그러한 예술가, 지망생들이 많아서 편향적으로 판단하는 것일 수 있으나,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즐거움과 생계에 타협을 할지라도 자신을 놓지 않는다. 이들의 인생 철학에는 분명 "즐거움"이 껴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순간이 연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불행할까?
내 친구 중 가장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친하기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이 친구가 불안에 떨며 지낼 줄 몰랐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외국에서 살며, 직접 만나길 소망했던 작가님을 만나뵙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불안은 가라앉지 않는다. 이 친구의 인생 철학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다. 인생에 분명한 방향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여물지 않아 상황과 자신을 완전히 신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이 친구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까. 단 1분 후의 미래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인간인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재난이나 재앙을 예측하며 대비할 수 있겠나. 광활한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같은 지구,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성체가 가지는 압박감과 불안과 초조는 그렇게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육신 하나로 온 우주를 감당하지 못한다. 시간을 거스르지도 못하고 누군가 말하는 운명 또한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반대로 우주를 감당할 분께 기대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 신앙이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인생 철학으로 취급된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안과 초조와 무기력함과 자기혐오가 해소된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과거처럼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내 부족함과 내 실수에 짖눌리지 않는다. 학점을 3점도 넘기지 못한 지방대 디자인과 졸업생인데 포폴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면 내 인생 이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참 두려워 하던 때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형편은 더 나빠졌다. 나는 더 늙었고, 내 스펙은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기록의 나열이다.
나는 우주를 유영하는 작은 지성체다. 한미하여 지금 살고 있는 세상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차분히 생각할 여력 없이 늘 다급하게 쫓기듯 살아가므로 자기 자신이 옳게 사는지 잘 모르면서 확신하는 그러한 우주먼지다. 그런데, 이 처지여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모난 구석이 가득한 원석을 잘 닦고 가공하여 빛나게 하시는 이가 계신다. 그 분은 내가 손을 모으고 말씀 드리는 것으로 나에게 귀기울이신다. 때때로 아파서 손도 마주잡지 못하고 드러 누웠을 때라도, 태도에 상관없이, 내가 찾는다는 이유로 응답하실 때도 있다. 심지어 내가 그 분을 모를 때도 그랬다. 이 사실이 내게 여유를 선사한다.
오늘의 본문 속 영적 기근이란 위와 같은 의식에 흐름에 따라 내게는 다르게 읽힌다.
만성적 애정 결핍으로 인한 다양한 인생 속 정신적 합병증
영적으로 풍부하다면 우리에게 결코 부족할 수 없는게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든든한 지면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은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새를 보고 꽃을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잠깐이라도 접하여 숨 트이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내 인생을 누리게 한 가장 큰 힘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으니까. 고통의 총량이 적은 세계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랑이 풍부한 세상이야말로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늘 적은 소감은 꽤 짧았다. 근데 자유롭게 손가락을 놀리다보니까 길어졌지...
위의 소감은 따로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라서 앞 뒤 맥락을 잘 살피지 않아 논리가 성큼 앞서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텐데, 어쩔건가. 이것은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작성되었지만 근본적으로 내 개인의 감상문이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ㅋㅋ
어쨌든 오늘 적었던 본문을 아카이빙하기 위해 아래에 따로 기록해둔다.
확실히 성경에 대한 접근성은 현대에 와서 상당히 개선되었다. 나는 성경을 구매하지 않아도 언제든 필요한 구절을 원하는 번역본으로 구할 수 있다. 이렇게 믿기 편한 시기에 사람들이 당면한, 내가 당면한 문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것에 있지 않을가. 나는 회복과 내 개인의 평안을 위해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 말하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회개와 훈련이 필요할수도 있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 희생과 사랑을 먼저 영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경을 챙겨보는 나야 이렇다지만, 스스로를 믿고 불안속에서 허덕이는 이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사랑이 아닐까. '영적 기근'은 나에게 만성적 애정 결핍으로 인한 다양한 인생 속 합병증으로 읽힌다. 다들 평안하길